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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책 표지

    1. 황솔아 작가 소개

    황솔아 작가님은 15년째 근무 중인 직장인이자 결혼 10년 차의 워킹맘입니다. 책 읽기와 글쓰기가 좋아 작가라는 이력을 더하게 되었고 어른들의 인간관계에 미처 대비하지 못해 상처받았던 10대의 이야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방어적이었던 20대 이야기, 그런 경험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가 여전히 어려운 30대의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얼굴을 보지도 목소리를 들어보지도 못한 황솔아 작가지만 나의 마음을 대변하듯 써 내려간 글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2. 줄거리

    12월 31일 밤 모두가 잠들고 혼자 tv 앞에 앉았다. 치열했던 20대의 시간이 저물고 행복하길 바라는 30대의 시작을 알리는 새해 카운트 다운을 마음속으로 같이 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의 사회생활은 무엇이 부족해서 극심한 근육통을 앓고 있었던 것인가?' 10대 시절의 애정 결핍이라고 하기에는 핑계 같았고, 20대에 스쳐가는 나쁜 인연의 탓으로만 보기엔 내 잘못도 있는 것 같았다. 부디 30대 사회생활은 순탄하게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와 인내를 갖게 되길 바라본다. 결혼을 하고 통영이라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여기서 새로운 출발과 함께 제대로 된 적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에서의 생활처럼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나를 세워가며 나의 자리를 지켜야만 하는 에너지 소비는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나 홀로 즐기기였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늘 만남의 연속이었다. 혼자인 게 싫어 쉬는 날이 되거나 저녁에는 무조건 약속을 만들었고, 사람과 어울리려 노력했다. 남이 보는 내 모습에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시간을 쏟았고, 그들의 평가에 그날 하루 내 기분도 결정되었다. 그렇게 나를 휘두르다 보니 곧 에너지가 방전이 되었다. 힘들면 안 만나도 될 텐데 그러지 못했다.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 다음 날 또 다른 상대를 물색했고, 상처받고 또 다른 사람을 물색하는 나쁜 패턴을 반복하는 생활이 계속 이어졌다. 분명 관계는 상호작용인데 늘 나만 안달복달하는 것 같았다. 다들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것인지, 내가 항상 먼저 만나자라고 말하는 게 부담스러운 건 아닌지 나도 모르게 또 눈치를 보고 있었다. 통영에서는 같은 실수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 힘들었다. 일부러 남들과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고 오롯이 내게 집중했다. 일을 할 때는 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고 원활하게 잘 돌아갈 정도로만 관계를 맺었다. 내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배려했고, 나를 갉아먹으면서 억지로 짜낸 배려는 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 내가 아프지 않을 만큼 보이지 않는 선을 그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알아채지는 않을까, 가식이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이런 내 모습을 더 좋게 봐주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인식했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들과 지나치게 관계 맺지 말아야 한다는 말의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3.<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나의 감상평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내면에서 비롯됩니다. 내면이 아프고 상처투성인데 외부에서 아무리 사랑을 준들 행복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을 믿지 못하고 오히려 밀어내고 말 것입니다. 내가 먼저 단단해져야 합니다. 상대의 눈치를 보며 다 맞춰주는 것은 친절한 것이 아니라 멘털이 약한 것입니다. 스스로 무너질까 봐 남들에게 상처받을까 봐 보호막을 친 것뿐입니다. 내가 나를 믿으면 그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지 알게 될 것이다라는 괴테의 말처럼, 스스로를 믿으십시오. 당신은 너무 멋진 사람입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혼자인 건 좋지만 외로운 건 싫어>.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 나는 그 속에서 이 글의 저자처럼 나를 위한 모습이 아닌 남의 눈치를 보며 그저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 요즘. 아름다운 글귀를 읽어서도 아니고 내용이 너무 슬퍼서도 아닌데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쳐 있는 나에게 이제 나를 위한 삶을 살라고 가르쳐주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