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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여행이란
우리는 왜 여행을 하고 싶어 할까? 분명 일상보다 불편하고 불안하다는 걸 잘 알면서 자꾸만 떠나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여행을 많이 다닌 사람들 도짐 챙기는 건 좀 귀찮아요. 그리고 이동 수단도 알아봐야 되고 숙소도 예약해야 되고 할 게 참 많습니다.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도 여행을 가려고 그렇게 노력을 합니다. 단지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탈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그 과정이 마냥 신나기만 한 건 아닙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험난한 여정도 거쳐야 되고 생각지 못했던 위험한 사건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여행지로 떠나는 이유는 평범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지의 문화와 정보를 체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여행하는 과정 속에서 겪게 되는 경험을 통해 우리가 뭔가를 배우게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행 중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기꺼이 행복해하면서 그것을 겪어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자기 안에 쌓아온 세계가 허물어지고 여행이 끝나고 나면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게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영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오래 준비해 온 대답> 김영하 작가의 시칠리아
이 책은 10년 전에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써졌으며 이미 2009년에 <니가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하라>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이번 개정판에는 초판에 없는 글도 추가되었고, 당시 찍은 사진들도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EBS에 있는 세계 테마 기행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런칭을 준비하던 제작진이 김영하 작가님을 찾아가서 어떤 나라로 여행을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마치 오래 준비해 온 대답처럼 시칠리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촬영을 하러 시칠리아를 다녀온 다음에 다섯 달 만에 아내분과 함께 시칠리아로 또 떠났다고 합니다. 책을 읽기 전에 시칠리아가 어딘지 몰라서 지도를 먼저 찾아봤습니다. 이탈리아 남서부에 있는 지 최대의 섬 시칠리아. 시칠리아는 그리스와 터키 바로 옆에 있는 섬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이지만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입니다. 김영아 작가님이 시칠리아를 두 번씩이나 찾은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제가 생각한 힌트는 이 두 부분입니다. -시칠리아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상상해오던 이탈리아가 있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사이프러스, 그리고 유쾌하고 친절한 사내들, 거대한 유적과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개들, 파랗고 잔잔한 지중해와 그것을 굽어보는 언덕 위에 올리브 나무 싸고 신선한 와인과 맛있는 파스타, 검은 머리의 여성들과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오는 길과 달리 떠나는 길은 비교적 평탄하였다. 나는 내 마음속에 시칠리아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다. 맛있는 음식과 거칠고 순박한 사람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으로 가득한 오래된 유적과 어지러운 거리들을 생각했다. 시칠리아는 나에게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책을 마치면서 아마 또다시 찾게 될 거라는 여운도 남깁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란 뜻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언젠가 꼭 한번 시칠리아로 가보고 싶습니다.
3. 여행의 이유
당시 김영아 작가님은 유명한 소설가였고 대학 교수였으며 방송도 진행하며 주위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근사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걸 다 정리하고 여행을 떠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책의 첫 장을 넘기면 하늘을 나는 갈매기 사진이 세 장 연달아 나오면서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어느새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 어린 예술가는 어디로 갔는가? 아직 무사한 걸까?' 이 짧은 문장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과연 내가 바라던 모습일까? 이 부분을 읽으면서 초판의 제목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배를 기다리던 중에 입구 전광판에 영어로 메모리 로스트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김영하 작가는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로 봤다고 합니다. 시칠리아를 여행하면서 잃어버린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다시 짐을 점검하다가 불현듯 떠오른 생각은 지난 세월 속에 잃어버린 것들이었다고 합니다. 안락한 집과 일상에서 삶과 정면으로 맞서는 야성을 잃어버렸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감지하는 감각도 잃어버리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며 자신과 세계에 집중하는 법도 망각했습니다. 어린 날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세상은 변한 게 참 많은데 정격 자신은 변했다는 걸 모른 채 살아갑니다. 그리고 적응하고 원래 그랬던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를 원하지만 늙지 말아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니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내 안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신선한 자극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거나 잃어버린 것들을 되살려야 합니다. 결국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내면을 모험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