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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헤르타 뮐러 작가 및 책 소개
이 책의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을 쓴 뮐러는 우연히 알게 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로부터 우크라이나 수용소에서 5년 동안 강제 노역을 했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뮐러는 파스티오르의 경험담을 받아 적었고, 둘은 함께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파스티오르가 세상을 떠나자 뮐러는 슬픔에 잠겨서 1년 가까이 글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2009년에 <숨그네>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뮐러는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숨그네라는 단어는 숨과 그네가 만나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사람이 숨을 쉴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그네가 흔들리는 상황을 묘사한 조어입니다. 뮐러는 단어와 대상 간의 거리를 줄이려는 노력을 많이 한 작가입니다. 시인 파스트오르의 말이 만나면서 새로운 단어들이 탄생되었습니다. 소설 속에도 숨그네 외에도 배고픈 천사, 신장삽, 양철, 키스, 볼빵 같은 조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 낯선 주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오면서 숨그네라는 소설이 빈틈없이 채워지게 됩니다.
2. <숨그네> 줄거리
1945년 겨울 17살 난 독일계 루마니아 소년이 짐을 쌓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됩니다. 그는 공원에서 들짐승 같은 미래를 즐기는 동성애자입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의 사랑도 그렇습니다. 소녀는 자신이 언젠가는 범죄자로 잡힐 것이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 두려워서 러시아의 수용소로 떠날 것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이속 열차에 몸을 실은 소년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동성애자라는 불편한 침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숨 쉬고 싶어서 수용소로 떠나는 레오에게 할머니는 너는 돌아올 거야라는 작별 인사를 합니다. 레오는 그 말을 작정하고 새긴 건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을 뿐인데, 수용소에서 지내는 내내 그 말과 동행하게 됩니다. 말은 그만큼 생명력 있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할머니의 말이 없었다면 죽음의 공포로 가득찬 수용소에서 레오가 버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은 혹독한 추위와 강제 노동, 그리고 이와 벼룩의 공격으로부터 괴로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괴로운 건 바로 배고픔이었습니다. 뼈와 가죽의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메마르고 있었습니다. 늘 다른 사람과 내 빵의 크기를 견주다가 빵 바꾸기 같은 부질없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수용소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시신을 처리하기도 전에 일단 그의 옷과 신발을 벗겨 취하고 그가 남겨놓은 빵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 재빠르게 움직여야 합니다. 과연 그들을 야만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희망을 잃은 지 오래지만 생존을 위해 숨을 멈추지 않고 숨그네를 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배고픔과 향수입니다. 향수는 언젠가 배불리 먹었던 것에 대한 그리움입니다. 레오는 스스로 무심한 편이라 뭔가를 마음에 담아두고 휘둘리거나 울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뼈와 가죽만 남으면 감정은 담대해지고 레오는 울컥 솟구치는 향수를 느낄 때마다 그 향수를 순하게 길들이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워서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용소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꽤 많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이상함 속에는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인간의 본성이 숨어 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수용소 생활도 5년이 지나면서 막을 내리게 됩니다. 레오가 할머니의 말대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자유롭고 행복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할머니는 레오의 재회를 기뻐하지만 나머지 가족들은 그다지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시 돌아온 고향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레오는 수용소에서 너무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레오는 수용소에서의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수용소에서보다 더 소외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수용소를 벗어났지만 레오의 마음은 영원히 수용소를 잊지 못합니다.
3. 짧은 리뷰
숨그네의 배경인 수용소가 우리와는 무관한 곳일까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용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용소라는 이름이 붙어져 있지 않을 뿐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겪지 않는다고 해서 배고픔의 고통이 없는 건 아니며 향수에 빠져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제노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의지와 감정을 무시한 채 노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으며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무언가 나를 속박하는 게 있다면 그게 수용소라 여겨집니다. 살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일들은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며 좋지 않은 일과 좋은 일이 혼합돼서 일어납니다. 아무리 버거운 삶이라 하더라도 실제 수용소에서 갇힌 극한의 상태만큼은 아니기에 우리는 이런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한 걸음 내디딜 힘을 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처참하지만 아름다운 글 < 숨그네> 추천합니다.